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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원어민교사 활용 우수사례(동상)
2007 원어민교사 활용 우수사례(동상)
  Date: 2009-07-20 00:07     View: 1101  

원어민 교사와의 삶

 

 

교사 권 경 희

대구과학고(대구광역시 소재)

 

 

2007년 3월은 내 삶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된 해이다. 중학교 교사 생활 16년을 마무리하고 실업계 고등학교로 옮겨 2년간 근무하면서 영문학비평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늘 염두에 두었던 특목고로 전근을 왔기 때문이다. 대구과학고등학교는 현재 개교 19년을 맞은 명문고이다. 매년 92명의 학생들이 입학하여 23명씩 4개 반에 배치가 되고 학년실과 수학, 과학, 영어 과목을 중심으로 교사 연구실이 따로 배치되어 있어서 교사의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올해 개교 이래 처음으로 원어민이 배치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4월 6일에 오게 되어 있었고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2년간 일본 도쿄에서 원어민 교사를 해오고 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이었다. 지난 교직 경험과 시원시원한 내 성격 탓이었는지 전근을 가보니 평가계 업무와 원어민 관리 업무가 내게 배당되어 있었다. 대구시교육청에서 처음 실시한 2003년 중등영어교사 해외영어연수에 한 달간 캐나다에 홈스테이를 하면서 살아 보면서 세계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이고, 인간의 감정은 유사하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원어민을 관리하는 일도 그것과 그리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큰 부담감은 갖지 않았다. 그리고 평소에 내가 가진 철학을 발휘할 터였다. ‘지성이면 감천’이고, 사람을 이용하려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마음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면 무난히 지낼 수 있으리라는 나의 생활관말이다.

 

3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원어민 교사 맞이가 시작되었다. 행정실에서는 먼저 1년간 머물 집을 구해주었다. 학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빌라였다. 될수록 교통을 고려하여 학교 근처에 집을 구하라는 교육청 권유에 따라 결정된 것이었다. 조그만 방 2개에 거실을 겸한 부엌이 딸리고 다소 넓은 베란다가 있는 아담한 빌라였다. 작년에 원어민 교사 신청건을 담당한 영어 교사가 인터넷 마켓을 활용하여 침대, 작은 옷장, 식탁을 구입했고, 내가 자주가는 마트에서 냉장고, 작은 청소기, 가스 렌지, 텔레비전을 구입했다. 가구를 들이고 난 뒤, 영어 교사들이 함께 가서 집안 전체를 샅샅이 청소하였다. 원어민 교사에게 쉽게 길을 가르쳐주기 위하여 학교로 걸어 올 수 있는 두 가지 길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두었다.

어학실 옆에 붙어 있는 어학 연구실은 다소 넓은 공간이었는데 원어민 교사가 사용할 책상과 컴퓨터를 설치하였다. 곧이어 정보부에서 인터넷 선을 연결하여 주었다. 교장선생님의 지시로 칠판도 화이트 보드로 바꾸고 테이블도 두 개 새로 사들였으며 블라인드를 달고 냉장고도 들여서 좀 더 편리한 사무실로 만들었다.

 

드디어 4월 6일이 되었다. 교감 선생님과 함께 오후에 대구국제교육이해센터로 갔다. 사무실 소파에 앉아있던 3명의 원어민 교사를 보았다. 그 중에 대구 과학고에 배정된 ‘로잘린드 마’(Rosaslind Ma) 선생님은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과학고에 선생님들이 도대체 ‘Ma’라고 하는 성이 무슨 뜻인지를 궁금히 여기고 있었는데 그녀를 만나는 순간 금방 알 수 있었다. ‘Ma’는 ‘마’(馬)씨 성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외양은 동양인 그 자체였다. 첫눈에 중국 여배우 ‘장쯔이’를 그대로 빼닮았다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긴 머리를 뒤로 묶고 깐깐하고 똑똑해 보이는 한 여자가 작은 체구지만 예의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고, 그녀 옆에는 그녀보다 더 커 보이는 커다란 트렁크가 놓여있었다.

 

국제이해교육센터 담당자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고 해당 서류를 받아든 뒤 원어민 교사를 데리고 교감선생님과 함께 돌아왔다. 월요일 교무회의가 열리던 날, 교장, 교감 선생님을 비롯하여 30여명의 선생님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원어민 선생님의 짧은 소개말이 있었다. 그녀의 명료한 발음과 친근한 인상은 원어민 교사가 입성한다는 소식에 다소 흥분하면서도 부담감을 가지던 모든 선생님들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하였다. 자신의 이름을 ‘로잘린드 마’로 소개하면서 “Call me just Rose.”라고 하며 미소를 띄던 친절한 그녀가 떠오른다. 곧이어 그녀의 쉽고 편안한 이름 ‘로즈’는 그녀를 학생들과 교사들의 친구가 되게 하는데 일조하였다. 그녀는 호주에서 ‘유기 화학’을 전공하였고 ‘박사 학위’를 소지한 재원이었다. 그러한 조건이 그녀를 과학고라는 우리 특목고에 배치하게 된 가장 우선적인 이유였다.

 

과학고는 재량과목으로 영어회화과목을 배정해두고 있었기 때문에 1학년 학생들은 주 2회, 2학년 학생들은 주 1회 원어민 선생님 시간을 활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일반 선생님들의 영어 회화 수업을 위해 기초반, 중급반을 설치하였고, 영어교사들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서 주 2회 원어민 교사와의 수업을 시작하였다.

 

한편 나는 원어민 선생님과 학생들과의 첫 만남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그녀를 환영하기 위한 수업준비를 하였다. 무엇보다 국제간 문화 이해가 가장 우선이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민요 ‘아리랑’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인터넷 영어 자료를 활용하여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고 학생들 중에서 노래를 잘 하는 학생들을 뽑아 축하곡을 준비하였다. 악기에 재주가 있는 학생을 뽑아 아리랑을 연주하게 하였다. 마침내 첫 시간이 되었고 흥분과 설렘 속에서 우리는 원어민 선생님을 위한 첫 수업을 보였다. 로즈 선생님의 따뜻한 인사말과 소개말은 깔끔한 영국식 발음을 통하여 학생들에게 잘 전달되었다.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설명을 잘 하느냐고 하자 “A good scientist is a good communicator.”(훌륭한 과학자는 말도 잘 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응답했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내게 그녀의 그 한마디는 날카로운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때 그녀가 보여주었던 촌철살인의 일침은 앞으로 그녀가 학교생활을 하면서 보여준 태도와 정확히 일치하였다.

 

Co-teaching을 하기 위하여 일주일간은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을 주었다. 교재와 앞으로 수업을 해야 할 방향은 일단 내가 결정하였다. 그리고 한 주간의 교안(Lesson Plan)이 완성되는 대로 내가 함께 검토하기로 하였다. 과학고는 2학년 2학기를 마치면 조기 졸업이 가능하므로 2학년들은 2학기에 있을 영어 면접을 중심으로 인터뷰와 에세이 작성에 주력하는 수업을 하였고 1학년은 전반적인 영어 표현 능력 향상에 주력하여 ‘환경, 여행, 문화, 시사, 인간관계’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였다. 소그룹을 중심으로 ‘과업 수행’에 초점을 두고 수업하였으며 다양한 말하기 수업을 해나갔다. 2학기 때부터는 1학년도 2학년과 마찬가지로 인터뷰에 대비한 자기소개, 대학 선택의 이유, 장래 희망과 같은 주제를 놓고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수업을 진행했다. 한편, 한국의 주요 휴일과 명절, 서양의 명절 같은 것들을 때에 맞추어 소개하고 대화해보는 시간도 여러 차례 가졌다. 특히, 원어민 교사의 손을 빌려 학생들의 글쓰기도 수정 보완해주는 기회도 가졌다.

 

휴일이 되면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대구 시내 및 근교의 관광지, 경주, 동해안 곳곳을 여행시켜 주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도 데리고 와서 한국 가정생활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한국의 노래방 문화를 체험하게 해준 것이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준 듯하다. 이후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다른 원어민선생님들을 같이 만나서 노래방에 가서 나는 한국의 전통적인 노래를, 그들은 그들 나라의 노래를 신나게 부른 때가 있었는데 참으로 좋은 시간이었다. 너와 내가 노래를 통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경험을 했던 것이다.

한 사무실을 같이 사용하였기 때문에 상대를 배려하고자 노력했던 부분이 사실 내게는 가장 힘들었다고 할 수 있다. 가끔 자유스럽게 영어 방송도 듣고 싶고, 노래도 크게 틀어 놓고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그녀의 연구에 방해가 될까봐 될수록 헤드폰을 사용하였고, 아침 식사를 제대로 하고 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집에 있는 이런 저런 간식도 자주 챙겨 갔다. 내가 진심을 다해 대해주자 어느 날부터 그녀도 빵이나 죽과 같은 간식류를 사와서 나를 챙겨 주기도 하였다.

한편, 지난 5월 초순에는, 일본에서 2년을 보내면 바로 호주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그녀의 부모님이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다시 한국으로 와서 1년간 더 체류하겠다는 말에 어찌나 놀라셨는지 예고도 없이 한국으로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두 분 다 직장생활을 하고 계시다고 하였는데 나 역시 자식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딸에 대한 그들의 염려와 넘치는 사랑을 잘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들을 맞이할 준비도 따로 하였다. 단골 음식점을 예약해두고 한국에 도착하고 사흘이 지나던 날 저녁에 부모님과 함께 만났다. 홍콩 출신이라서 그런지 외양이 일단 우리와 거의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낯설음을 재빨리 없애 준 것 같다. 학교에서 똑부러지게 일하고 있는 로즈였기에 나는 그 부모님께도 칭찬으로 일관된 말을 전해드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형적인 한국 부모님처럼 자식 교육에 엄한 분들이었는데 당신들의 딸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절절이 베어 나와 내 가슴이 나도 모르게 미어질 정도였다. 육순이 되신 부모님들이 수천리길도 마다않으시고 와서는 부족한 살림살이도 채워주시고 가셨다는 말을 듣는 순간, 로즈에게 더욱 친절하고 살뜰한 배려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정말 부모의 사랑은 세계 어디서나 공통적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학교 회식이나 친목회에 꼬박 꼬박 참석하였고, 점심 식사시간에는 반드시 동행하여 어색함을 덜게 하였다. 다행인 것은 그녀가 편식하는 법이 없이 모든 음식을 실험정신으로 맛보았고, 곧이어 한국 음식을 참 좋아하게 된 것이었다. 특히, 굴국밥, 물오뎅, 대구탕, 비빔밥, 납작만두, 삼계탕, 안동 칼국수, 부침개를 즐겨 먹었다. 로즈는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여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에게 항상 친절하여 그 경계심을 없애는데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세계를 다니며 좀 더 많은 문화를 접하고자 하는 그녀의 열린 가슴에서 나온 태도가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영어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계신 교장 선생님께서 로즈의 성실한 태도에 감동하셔서 가끔 어학실을 찾아와 대화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래 기본적으로 영어 실력이 있는 학생들이기는 하지만, 서서히 원어민교사와의 수업을 즐거워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교장 선생님께서는 한 해 더 머물러주기를 진심으로 원하였고 그 의사를 종종 나와 로즈에게 전하곤 했다. 로즈는 자신의 인생 계획 상, 한국에는 1년만 머물기로 하였다면서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비추곤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재고를 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11월 30일까지 재계약에 대한 의사를 교육청에 밝혀야하는데 어떤 대답이 나올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올해 대구광역시는 무려 100여명이 넘는 원어민 교사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원어민을 활용한 다양한 영어 캠프, 전화 영어 수업, 수업 발표, 교과 연구회 등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는 “Better Two? Best Two!” 라는 교과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원어민 선생님과 함께 하는 영어 수업’이라는 연구 주제 아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원어민교사와 한국인 교사 각각 다섯 명씩으로 구성된 연구회인데 지산중학교 영어교사인 최보경 선생님이 회장으로서 활발한 연구회 활동은 물론이고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원어민과의 수업에 대한 질적 향상을 논의해오고 있다. 물론 그 정기적 모임에는 원어민 선생님들도 함께 참석하신다.

 

지난 8개월간 원어민 관리 교사로 지내면서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귀한 벗을 하나 얻은 셈이 되었다. 물론 가끔은 힘들고 피곤할 때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금방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여 하늘이 준 귀한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영어권 국가로 어학연수나 유학을 가서 엄청난 돈을 쓰며 영어를 배우는 현실에서 원어민 교사가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고 언제든지 질문할 수 있으며 함께 수업을 고안해나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임에 틀림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2007년은 영어 교사로서의 내 삶에 전환점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후에 나의 남은 영어 교사시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을 짐작한다. 그리고 내년 한 해도 이 멋지고 능력 있는 로즈 선생님과 다시 수업을 해 나갈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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