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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원어민교사 활용 우수사례(장려상)
2008 원어민교사 활용 우수사례(장려상)
  Date: 2009-07-20 00:24     View: 2468  


이건 로또였다!



                    



                               묵호여자중학교, 김희복



 



 



 



3년 전,  8월 말 화창한 어느 날 교육청으로부터 공문 하나를 받았다.  원어민이 배치되는 학교의 협력교사는 직접 춘천 교육청에서 원어민교사를 데려 가라는 내용이었다. 이 공문을 받고 처음에는 기분이 좀 상했다. 동해에서 춘천까지 편도 3시간 반 왕복은 7시간 이상의 운전거리, 그리고 출장으로 인한 수업결손과 보강, 늦은 귀가 등등이 나를 괴롭혔다. 출장가기도 전에 벌써 기분이 우울했다. 그리고 원어민 교사로 인해 생활이 헝클어지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더욱 기분이 언짢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좋은 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긍정적인 면만을 보기로 결심했다. 춘천에서 동해로 돌아오는 내내, 3시간이상 영어원어민과 함께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원했던 능통한 회화구사,  마음속으로 만 가지고 있던 그 염원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부푼 기대까지 들었다. 영어원어민 앞에만 서면 언제나 주눅 들고 말을 더듬거리는 한심한 자신을 생각할 때 이것은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원어민 교사를 최대 활용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하는 교사가 되리라 다짐했다. 교실에서 100%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나에게도 가능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의 능통한 영어구사로 학생들이 영어환경에 노출되면 그들도 귀가 열리고 입을 열려 전 국민이 앓고 있는 영어 열병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났다. 영어를 모국어로 또는 제2 국어로 사용하는 나라에 가지 않고도 영어에 능통하게 되는 것은 노다지를 캐는 것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어민 협력교사로 일하는 동안 나는 유창하게 영어구사를 하게 되는 나의 오랜 소망의 실현만을 기억하기 했다. 원어민 협력교사, 이건 일종의 로또였다.



 이런 생각에 나는 협력교사가 원어민 교사의 공인된 대화상대자이자 친구인 좋은 조건이라 여기고 언제나 말을 걸 구실을 찾아왔다. 이 글에 그동안 3명의 원어민 교사와 일하면서 어떻게 영어실력을 향상시켜왔는지 몇 가지 경험을 담아보았다.



 



1. 원어민 교사와 규칙적으로 토론하기



 몇 년 동안 쭉 영어과 workshop에 참여하였는데 한번은 속초에서 근무하는 지호진 선생님으로부터 co-teaching에 대한 경험을 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진정한 co-teaching을 위해서는 다음 주 수업에 대해 미리 반드시 토론할 것을 강조했다. 나는 이 토론을 원어민 교사와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이유라고 여겼다. 협력교사가 되면서 내내 이것을 실천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토론없이 수업에 들어가면 team-teaching은 고사하고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몰라 교사가 아닌 단순한 수업 참관자처럼 원어민 교사가 하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로 목, 금요일에 그 다음 주의 수업에 관해 토론한다. 원어민교사가 어떻게 진행하겠다는 기본 지도안을 가지고 오면 우리가 들어가는 학급의 수준에 맞게 조금씩 다르게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수업 안을 짰다. 물론 해보고 싶은 수업방식과 좋은 내용이 있을 경우, 수업에 대한 제안을 통하여 나 자신의 수업방안을 team-teaching에서 적용할 때도 있다. 원어민과 team-teaching을 할 때 아무리 철저히 잘 계획을 세워도 첫 반이 실험이 대상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첫 반 수업 후 별 문제없다고 두 교사가 의견 일치를 보면 그대로 다른 반에도 적용하고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여겨지면 다시 상호 의견교환을 통해 수정 보완하여 그 다음 반 수업에서는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고 했다. 이렇게 수업에 관한 잦은 대화로 교사들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다양한 교실영어와 교육에 관련된 표현을 깊이있게 체득하게 되었다.



 



2. 점심시간에 원어민과 함께 식사하면서 잡담하기



 점심시간에는 늘 원어민과 함께 짝꿍처럼 붙어 다니면서 급식소에서 식사를 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3명의 원어민 교사를 겪었다. 처음 원어민 해산물에 알레르기가 있는 Deana라는 교사였다. 이 선생님은 나 없이 혼자 급식소에 거의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알레르기가 있어서 언제나 협력교사인 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것은 어떤 음식이고 저것은 어떤 음식이고  그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항상 말을 해줘야했다. 귀찮고 짜증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나에게 너무나 행운이었다. 이 선생님의 알레르기 덕분에 언제나 같이 식사하면서 음식에 관한 표현을 너무나 많이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원어민 교사이후 이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여 두 번째 원어민교사 한국계 캐나다인이 Angela 와도 자주 점심시간에 같이 앉아 식사를 하면서 많은 영어표현을 반찬삼아 맛있게 먹었다. 이 선생님은 한국계분이라 식사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주로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한국계분이라 그런지 학생들과 너무나 친숙하고 학생들의 이름을 다른 원어민 보다 잘 외웠다. 그래서 학생들에 관한 화제가 우리에 밥상에 올라 올 때가 많았다.



 세 번째 원어민은 유난히도 음식 알레르기가 많은 Megan이다. 이 선생님은 자신의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오신다. 하지만 예전에 다른 선생님들처럼 식사는 급식소에 같이 한다.



  영어로 잡담하는 것이 늘어갔고 여자들만의 특유의 수다도 점점 많이 늘어갔다. 새로운 표현을 익혔으면 원어민에게 시도해보았다. 새로 배운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 그냥 머릿속에 남아 있다가 잊어버리기가 일수였는데, 자주 사용하게 되면서 내 것으로 남는 표현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매일같이 영어로 말하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영어로 말하기는 일일신(日日新)이 되어갔다. 특히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면서 상황에 맞게 쓰는지도 원어민교사의 반응을 통해 바로 알게 되면서 처음의 불안감은 점점 자신감으로 변하고 있었다. 의미 자체는 맞아도 어감의 차이로 상황에 어색한 경우는 EFL(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환경에서 감지하기 쉽지 않았는데 교육현장에서 원어민과 직접 경험을 통해 표현이 갖는 뉘앙스를 구별하게 되었다. 이렇게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의 가벼운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하면서 영어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이 더해졌다.



 



3. 원어민교사에게서 배운 새로운 표현 메모하기



 처음 원어민과 수업에 함께 들어갔을 때 무척 긴장을 많이 했다. 혹시 못 알아들어서 아이들 앞에서 망신당할까하는 불안감에 나 자신이 학생들보다 더 귀를 쫑긋하고 잘 들으려했다. 그럴 때 필기도구는 필수였다. 학생들에게 인사할 때, 활동을 설명할 때 그리고 어휘 설명 때 혹시 새로운 표현이 있으면 계속 메모를 했다. 원어민이 사용하는 말을 혼자 수업을 할 때 그대로 사용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80% 이상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위해 노력하였다. 학교현장에서 언제든지 영어가 막힘없이 술술 나오게 하려고 했다.



 영어원어민 교사들의 배치는 한국인 영어교사들의 어학연수가 아마 최우선 목적일 것이라는 생각에 함께 근무하는 동안 최대한 많이 배우려고 한다.



 



 4. 매일 한 가지 이상 질문하기



 처음 원어민과 함께 근무하면서 어떻게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원어민과 자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협력교사라고해도 학교의 일정이나 행사 등을 알려주면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근무시간에 계속 수다 떨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국선생님들처럼 업무상 공통의 화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날은 점심시간외에 별 대화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경우가 일수였다. 그리고 원어민이 뭔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더욱 가벼운 대화를 하기 어색했다. 그러다가 질문을 구실삼아 말을 건네는 방법을 써보았다. 왠지 의문사항이 있을 경우는 언제든지 말을 건네도 된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교과서에 나오는 표현, 문제지에 나오는 표현, 영어프로그램에서 들은 표현, 영화에서 들은 표현 등등 아무것이나 약간 의문 나는 점은 꼭 물었다. 이렇게 질문으로 대화를 트고 이와 관련된 것을 더 이야기했다. 지속적인 질문을 통해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고 어떤 경우에 사용해야 더 적절한지 알게 되었다. 원어민 교사와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언어가 아니라 수업을 통해 그리고 혼자 암기를 통해 배운 영어라 의사소통은 가능하나 뭔가 좀 상황에 어색한 것, 바르게 알지 못했던 것을 더 확실히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5. 시험기간에 함께 시간 보내기



 원어민 교사와 함께 근무하는 그 자체만으로 영어실력을 향상하기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직장에서는 업무상 대화 외에 다른 대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직장이라는 형식이 억매이게 했고 수업과 처리할 업무가 많아 시간내기가 어려웠다. 주말과 일과 후에도 각자의 생활이 있어 함께 시간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반해 시험기간은 원어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껏 대화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우리 학교직원이 아니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원어민교사와 협력교사인 나는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근무지는 동해이지만 생활근거지는 강릉인 난 원어민 교사를 강릉으로 데리고 나와 다양한 곳으로 데리고 다녔다. 강릉은 볼 곳이 꽤 많아 함께 시간보내기에 좋은 곳이다. 경포호수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참소리박물관, 경양식당, 정동진으로 가는 길에 있는 북한 잠수함과 전투함대, 그리고 정동진의 모래시계와 썬크루즈 조각공원 등등이 있다. 이런 곳을 데리고 다닐 때는 마치 관광가이드가 된 마냥 신이 나고 즐거웠다. 영어원어민을 데리고 다니면서 마음껏 영어로 대화하고 그리고 다양한 표현을 연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특히 오죽헌에 데리고 갈 때는 우리의 역사와 이율곡선생님, 신사임당에 대한 자랑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처음에 데리고 갔을 때는 약간 서툰 영어가 두 번째, 세 번째 데리고 가면서 점점 자연스럽고 세련된 영어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6. 원어민교사와 회화 연수 참여하기



 십수년전 처음으로 EPIK 교사가 하는 한국인 영어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회화수업에 참여하였다. 처음 참석했을 때 그 떨림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우선 귀가 열리지 않았다. 영국에서 온 원어민교사의  here, got, eight, home 등등 이렇게 쉬운 단어 들리지 않는 그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귀를 좀 열어야겠다는 결심으로 한 교육청 당 한명의 원어민이 근무하던 그 시절 거의 회화연수에 빠지지 않았다. 이 회화연수에 참석하기 위해 미리미리 할 일을 다해놓았다. 어느 학교로 가든 어느 학년을 맡게 되든 회화수업에는 빠지지 않으려고 무단히 노력했다. 이렇게 여러 명의 EPIK 교사를 만나면서 조금씩 귀가 열리고 입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학교에 원어민이 배치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제 다른 학교에 갈피요가 없다는 생각에 한없이 행복했다. 그런데 막상 원어민이 배치되자 학교일정이 너무 바빠 동료교사들의 불참이 나를 회의감에 빠지게 했다. 잠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 좋은 상황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혼자라도 계속 회화를 하기로 했다. 늘 원어민들이 우리 국민의 혈세로 봉급을 받고 있기에 이런 사람들과 최대한 영어 말하기를 연습하여 학생들이 조기유학을 가지 않아도 우리 한국교사로부터 자연스럽게 영어구사능력을 습득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기 초에 원어민교사의 시간표를 작성할 때 영어교사들의 회화시간을 정해놓고 혼자 할 경우는 세계 주요화제를 다루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나 자신이 수업 준비를 해서 수업을 이끌었다. 혼자 영어기사를 읽는 것보다 원어민과 지구촌 뉴스를 가지고 다양한 기사를 다루며 자연스럽게 다양한 표현을 접하고 익혔다. 영어에 대한 나 자신의 한계를 넓히고 원어민교사 아닌 다른 영어 원어민과도 자연스럽게 대화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둘이서 진지한 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토론하다 끝나는 종이나면 둘 다 깜짝 놀랐다. 이런 토론을 끝나고 나올 땐 기분이 하늘을 날아간다.



 



 7. 원어민교사를 병원에 데려가기



 나와 같이 근무한 원어민교사들은 환경이 달라서 그런지 아픈 경우가 많았다. 한국계인 선생님인 Angela는 건강상 별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두 백인 선생님 자주 아팠다. 아플 때 사람을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이것이 원어민교사들에게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았다. 아픈 때 언어소통이 되지 않아 더욱 고생하였고 다른 때보다 협력교사가 같이 있어주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근무 외 시간이라 차마 부탁하지 못하는 것 같아 같이 병원에 가줄까 하고 건네는 말에 화색이 도는 것을 보고 병원에 같이 갔다. 그들이 아픈 것도 한편으로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의학에 관한 표현을 많이 다루게 되면서 그쪽분야에 관한 어휘가 많이 신장되었다. 가벼운 감기에서 골절, 내과, 비뇨기과, 심지어 한의원까지 같이 갔다. 처음에 함께 근무한 원어민교사 Deana와 같이 온 이웃학교 원어민교사까지 함께 병원에 가길 원해 몇 번 데려갔다. 이 부분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우리학교 원어민교사의 친구이기도 하며 셋이 함께 어울릴 때도 많아 친구로서 함께 병원에 갔다. 그들은 통역하는 친구가 있어 편안함을 느꼈고 난 영어를 연습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 일이 있으면 저녁대접을 받기도 하였다. 그럴 때는 여러 명의 원어민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다른 색깔의 영어를 경험하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8. 전화통화 하기



 원어민이 아프거나 무슨 일이 있을 경우 당연히 협력교사인 나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하여 알려주었다. 이런 경우에 반드시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다시 전화를 걸어서 괜찮은지 확인했다. 그리고 주말에도 가끔 잘 지내는지 안부전화를 물을 때도 있었다. 처음 우리 학교에 배치된 원어민은 한국에 대해 잘 몰라 의사소통과 문화의 차이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 언제든지 의사소통으로 인해 힘들 때는 전화를 해도 된다고 했더니 자주 전화를 나에게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예를 들면 택시를 타고 어디로 갈 때 원어민이 하는 한국말을 기사분이 잘 못 알아들 때도 있고 집 보일러에 기름이 떨어졌는데 우리말을 할 수 없어 부탁 할 때도 있었다.



 사실 영어로 전화통화는 좀 자신이 없는 부분이었는데 같이 근무하는 원어민교사의 목소리는 편안해서 통화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약간 전화통화에 자신감이 조금 생기자 용기가 내어 이쪽에서 전화를 걸어 그냥 안부를 묻기도 했다. 방학 때는 서로 자주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떠들곤 했다. 이렇게 전화로 잡담까지 할 수 있게 되자 한층 더 전화통화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고 그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원어민과도 자주 통화하게 되었다.



 



 가끔은 협력교사로 일하면서 원어민교사의 개인비서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오히려 더 못하다는 느낌도 든다. 너무 자존심이 상할 때도 많다. 한번은 원어민교사가 택시에 가방을 놓고 내려서 다른 모든 업무를 뒤로 한 채  동분서주해가면서 가방을 찾기위해 수십 통의 전화를 한 적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없이 도와줘야한다는 생각이 나를 억압할 때도 있다.  원어민교사와 team-teaching하는 협력교사라는 이유로 병원까지 데리고 가야하고 무슨 일이든 손발을 걷어 부치고 도와줘야하나 생각하면 스스로 회의(懷疑)가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학생들을 생각하면 협력교사로 자부심을 갖게 되고 다시 원어민교사를 도와줄 방법을 모색하고 대화할 방법을 찾게 된다.



 언제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적극적으로 웃으면서 도와주었다. 도와주면서 고맙다는 말도 듣고 영어 실력도 향상시킬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고 여겨진다. 해외에 가지도 않고 영어에 능통하게 된다면 이건 로또당첨이라고 생각한다. 협력교사 업무는 나의 영어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원어민과 대화할 구실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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