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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2009 원어민교사활용 우수사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2009 원어민교사활용 우수사례)
  Date: 2009-11-25 07:14     View: 1244  

*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

 

교사 김영화

                                         서래초등학교(서울)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활용 수기 공모’라니…, 공문함을 들여다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6학년 영어전담교사를 10년째 하면서, 원어민담당자로써의 나의 경험을 생각나는 대로 하나씩 컴퓨터에 저장해오고 있었는데….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기록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언젠가 교직을 떠나게 될 때 나의 경험을 후임자에게 넘겨주면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아 놀랐고, 곧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어민과의 첫 만남!

  4년 전 2005년 9월, 봉천동에 위치한 서울원당초등학교로 기억한다.

  처음으로 원어민영어보조교사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초등영어에 관심을 많이 보였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 담당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업무를 맡게 된 것이 무척 반가웠다.

  남들은 ‘힘들 텐데…’ 하고 걱정해주는 분들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혼자서 영어공부를 해왔고 집을 떠나 영어권 나라로 가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신나게 기다려지는 일이었다.

  기대와 흥분과 실망!

  속칭 학군이 좋지 않았던 곳이라 외국사람을 보는 것이 신기했던 그 곳은, 나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가 흥분하고 있었다.

  실제로 쭉쭉빵빵 금발머리의 캐네디언 앨리가 부임했을 때, 교장선생님부터 어린 학생들까지 모두 기웃거리며 친절하게 대해주려고 애썼다. 경쟁이라도 하는 듯 마주칠 때마다, Hi! Hello! 손을 흔들어 주기 바빴고 요구하는 것이면 다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흥분은 겨우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원어민영어보조교사와의 허니문이 지나자, 눈을 빛내며 ‘Good morning!’을 외치던 학생들이 수업시간 10분만 지나면 늘어지기 시작했고, 좀 더 시간이 흐르자 아예 말이 없어졌다.

  앨리도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생겨났고, 학생들과도 교직원들과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고, 나는 당황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마음이 모질지 못한 나는 평소에 ‘No!’라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앨리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왜 저러지?’ ‘저러면 안 되는데…’ 하고 속으로 애를 태웠을 뿐 ‘아니다’ ‘안 된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점은 점점 더 커져 갔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옷차림, 퇴근시간보다 일찍 나가고 싶어 하는 모습, 잦은 결석 등등.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제가 표면화될 때마다,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주며 엄격한 근무태도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로가 문제를 잘 해결하자고 하는 말이었지만 오히려 문제가 더 커져만 갔고, 얼굴을 붉히며 반박하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를 미워한다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는 중에도 앨리는 재계약을 하게 되었고, 재계약 후에는 앨리를 다루는 일이 더 힘겨워지면서, 앨리를 향하는 주위 선생님들의 시선은 점점 더 싸늘해져갔다.

  앨리의 계약기간 6개월을 남겨놓은 2007년 3월, 나는 서울서래초등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남은 6개월 동안, 전임지의 원어민담당자가 앨리 때문에 엄청 속을 썩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어서 앨리를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라는 말도 전해 들어야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기분이 좋을 리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받아 마땅한 질책이구나 싶었다.

  앞서 일어났던 모든 매끄럽지 못한 앨리와의 문제는, 앨리의 잘못이 아니라 처음부터 친절하게 대해주려는 마음만 앞섰던 나의 잘못이었다.

  미리 알고 준비했더라면 호미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을, 가래로 막아도 힘든 상황으로 만들어 간 나의 잘못이었다.

  ‘학년 초부터 미리미리 지킬 것을 알려주었더라면…’ 하는 후회스러움으로 난 내 가슴을 쳤다.

  내년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

  그래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

  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서래초등학교로 옮겨온 3월, 새 학년을 맞아 미국 총각 제드가 왔다.

  나는 원어민담당자로서 처음부터 솔선수범하며 허점을 보이지 않도록 노력했다. 철저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고칠 것은 고치라고 해야 될 것 같아서였다.

  원어민영어보조교사는 1주일에 한 번씩, 4?5?6학년의 재량수업시간에 들어가서 담임선생님과 함께 협력수업을 하는 것으로 시간표가 짜여졌다.

  나와 같이 협력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같은 방에서 근무하며  수업안을 짜기도 하고 수업안 짜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연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료를 만들며 나의 생각이 어떤지, 틀린 곳은 없는지, 더 좋은 표현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물으며 내 자료를 업그레이드 시켰다

  공무원 근무 규정도 알려주며 우리와 같은 마음자세로 근무해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고, 항상 모범을 보였다.

  또 제드가 궁금해 하는 것이나 요구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주려 애쓰면서도, 안 되는 것은 왜 아니 되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려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제드는 참 성실한 사람이었다. 본 수업은 물론 학교 일에도 협조를 아끼지 않았는데, 특히 각종 영어 관련 행사가 있을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제드와 마주칠 때마다 무척 반가와 하며 손들을 흔들었다.

 

  나 또한 늘 배움에 목말라있던 터라, 틈만 나면 영어공부를 하면서 모르는 것을 묻고 메모를 하였다. 그러다 보니, 메모한 것만도 한 권의 책이 될 정도가 되었고 시간이 가는 만큼 책의 부피가 점점 늘어났다. 나는 늘어나는 책의 부피만큼이나 늘어나는 행복함을 느끼면서, 이 원어민영어보조교사제도가 학생들보다 나를 위한 제도인 듯 생각되어질 정도였다.

 

  원어민영어보조교사의 수업이야말로 TEE 프로젝트의 모델이 아니겠는가?    영어시간만 되면 나대거나 지루해하는 학생들이지만, 완벽한 발음으로 가르치는 제드와 함께 공부하게 되면, 학생들의 학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당연히 학생들도 만족해할 것이라고 난 생각했다.

 

  그러나 2학기 중간쯤 접어든 어느 날 제드는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수업시간에 영어를 잘하는 한두 명만 제외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답도 안하고 참여도 안하고 졸듯이 앉아있다고 했다. 배우고자 하는 의욕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난 또 한 번 놀랐다.

  늘 좋은 수업을 하고자 나는 해마다 수업안을 업그래이드 해가며 노력하건만, 학생들은 열심히 잘 듣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며 늘 안타까웠고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원어민영어보조교사의 수업에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절망감을 제드가 똑같이 느꼈다니,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 곳은 학부형들의 교육열이 높다.

  어려서부터 영어에 시달린 탓에 학생들은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생각했었다.

  ‘아! 단 하루라도 배우고자는 열망을 가진 학생들을 가르쳐봤으면….’

  소를 물가로 끄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학교에서는 재계약하기를 바랐지만 의욕이 없는 학생들을 가르치려니 보람을 느낄 수 없다며, 1년 계약을 끝내고 제드는 돌아가 버렸다.

 

  가장 중요한 것!!!

  2008년 2월 제드가 돌아가고, 3월에 우리의 교포 2세인 뉴욕아가씨 보화가 왔다. 학교의 방침도 바뀌어 원어민영어보조교사는 영어교과시간에 영어전담교사와 협력수업을 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원어민영어보조교사들은 교사로서의 경험이 없어서 수업기술이 부족하고 학습안도 다양하지 못하다.

  수업준비 없이 그냥 수업에 들어갔다가 두서없이 이것저것 늘어놓으며 시간이 부족해지거나, 할 것이 없어서 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나는 보화의 수업안을 사전에 반드시 확인했고 그 내용에 대해서 협의했다. 나의 수업안도 보여주며 다양한 수업기술을 알려주었다.

 

  학생들에게도 외국인과의 생활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강조했다.

  협력수업에 들어가면 원어민영어보조교사가 수업을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도록 나는 먼저 학습분위기를 조성한다.

  아무리 수업준비를 많이 한들 학생들이 열심히 듣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잘 가르쳐야 하지만 학생들도 집중해서 잘 들어야 한다.

  학원공부에 지쳐서 의욕이 없어하는 학생들은, 궤간순시를 하며 하나하나 수업에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학생들이 이해를 못하는 부분에서는 나는 우리말로 설명을 해준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 학생들 앞에서 계속 영어로만 말한다고 해서 영어가 들리겠는가? 외국에서 살다온 몇 명만을 위한 공부이다.

 

  9월에는 미국총각 벤자민이 오게 되어 원어민영어보조교사가 2명이 되었다. 서로 맞추어 가는 노력 속에서 원어민영어보조교사들은 그들 특유의 성실함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수업 후 느끼는 절망감을 드디어 떨칠 수 있었다.

 

  많은 것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즐거운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그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가운데 나는 그들의 관심사에 대해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진한 아쉬움이 남았고 내 말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들의 관심사에 대해서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물론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원어민영어보조교사 업무편람을 보내주고 우리교육청에서도 공문을 보내서 할일을 알려주기 때문에, 그때그때 공문따라 처리하면 되겠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어민담당자의 매뉴얼.

  2009년 3월, 1년 계약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간 보화의 후임으로 우리교포 2세인 스티븐이 영국에서 왔다.

  올해부터는 좀 여유를 가지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이제까지의 나의 경험을 토대로 원어민담당자가 알아야 할 일들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했다.

 

       (1) 원어민영어보조교사를 맞을 준비

       (2) 출근 첫날 해야 할 일

       (3) 출근 두 번째 날 해야 할 일

              (근무자세에 대하여 알려줄 것)

       (4) 첫월급을 받을 때 확인할 것

       (5) 외국인등록증에 대하여

       (6) 협력교사의 자세

       (7) 서로의 원활한 관계를 위한 행동요령

 

 

 

 

  영어공부를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지만 나의 영어실력은 그리 유창하지 못하고 버벅거릴 때가 많다. 그러나 원어민영어보조교사들이 궁금해 할 때마다 자료를 보여주며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는 나의 모습에 아주 만족해하고 고마워하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도 흐뭇하다.

  원어민영어보조교사의 활용.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국가에서 많은 돈을 들여가며 하는 사업인 만큼, 원어민영어보조교사들을 아웃싸이더가 아닌 협조자로 만들어야 하고, 그 성공여부는 우리 원어민담당자의 손에 달려있다고 나는 믿는다.

 

  36년을 넘는 교직기간 중 2005년 5월 25일 ‘‘엄마! 선생님 영어가 들려요’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2008년 12월 5일에는 ‘지금 6학년 교실에서는…’ 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비록 한 두 권일지라도 꾸준히 팔린다는 말을 들으면, 대한민국 어느 곳에선가 나의 책이 교육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흐뭇해진다.

 

  아직 정년까지는 4년이 남아 있다.

  하지만 오늘도 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뵙고 나오면서, 조만간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일에 매달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만두기 전에 얼른 나의 경험을 정리해서, 어디에선가 원어민영어보조교사를 다룬 경험을 필요로 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바빠진다.

   물론 나의 생각이 다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연구하고 기록한 것을 참고한다면 후배들이 조금은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그 위에 나보다 더 훌륭한 경험이 조금씩 더 쌓여간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교육계가 발전하는 모습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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